새로운 세계와 리얼리즘 이응노, 해방공간~1950년대 2016.11.12-2017.8.31 2013-2016


The young artist or this year, Layer-landscape, Daegu arts center, Daegu 2016.8.24-9.11 2회 개인전 2015

2016 올해의 청년작가전 겹-풍경, 대구 문화예술회관, 대구 2016.8.24-9.11







The young artist or this year, Layer-landscape, Daegu arts center, Daegu 2016.8.24-9.11 2회 개인전 2015

2016 올해의 청년작가전 겹-풍경, 대구 문화예술회관, 대구 2016.8.24-9.11


겹겹의 돌

 

 

노아영 (미술평론)

 

화면 가운데로 하천의 돌이 보인다. 겹겹이 쌓아올린 돌이다. 그것은 어느 여름 날 오후, 찌는 햇살을 받아 아마도 반짝거리는 표면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 속의 돌은 그렇지 않다. 바스락거리는 질감과 오래된 온기를 품은 돌은 쾡 한 낯빛으로 무어라 인사를 건넨다. 작가는 일상을 오가며 매일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낸 뒤, 그것을 또 다시 회화로 재구성하였다. 매일 보았던 백 한 번째 가로수와 실개천의 작은 돌은 작가의 눈과 손을 통하여 또 한 번 가시적 풍경으로 재현된다. 그것은 여러 겹의 붓질로 비로소 완연한 돌이 된 풍경이다. 반복된 붓질은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 내어 어제의 풍경을 그제의 풍경으로 돌려놓는다. 무수하게 반복된 필선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시간이라는 층위를 형성하여 오늘의 대상을 먼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격이다.

작가는 하나의 획이 그어지고 그 위에 같은 크기와 방향의 획을 또 한 번 긋는 일종의 반복 행위를 통하여, 대상의 경계를 면으로 바꾸어 나간다. 그리하여 멀리서 그림을 바라 볼 경우, 대상을 하나의 면과 색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획의 반복된 붓질은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자, 화면에서 대상을 만들어 나가는 행위이다. 회화 안에서 이러한 중첩된 붓질은 겹겹의 풍경을 이루며, 화면의 깊이와 무게를 더해간다. 그것은 붓의 측면을 사용하여 면()적으로 포개어 그리는 미점(米點)’ 이라는 준법을 통해 일종의 리듬과 호흡을 담아내는 기술로 재현된다. 즉 형태의 윤곽선을 그리지 않고 점의 중첩된 표현을 통하여 형상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미이다. 한 번의 터치와 붓의 움직임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레이어(Layer)를 형성하는 작가의 회화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 그 속에서 마주하는 같은 풍경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하여 돌은 말이 없지만, 그 시간을 인내하고 인내하여 만들어진 겹겹의 풍경이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돌의 모습이며, 각인된 돌의 풍경일 것이다.

작가의 회화는 그리는 방식이 그림의 주제와 연동하여 하나의 묶음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의식의 흐름또는 기억의 순간선이 지나간 시간으로 보고, 그리는 방식과 대상의 주제를 서로 연동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선이 만나 면이 되고, 면과 면이 쌓여 완연한 형상을 이루게 되는 작업 방식은 선의 시간사물의 시간을 함께 인지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 재현의 기술이 그림의 주제와 연동하여 하나의 그릇을 생성하는 격이다.

과거에 작가는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풍경을 그려 낸 적이 있다. 현재는 폐교가 되어 본연의 자취를 잃어버린 학교의 모습은 작가의 기억을 통해 흐려진 풍경으로 재현되었다. 학교가 있던 자리에는 수영장이 만들어지고, 야자수 나무가 심어졌지만, 이질적인 풍경 안에서도 학교를 연상시키는 여러 흔적들은 회화의 소재가 될 수 있었다. 넓은 운동장과 계단, 교실의 천정, 벽의 모서리 등은 폐교가 되면서 생겨난 상처와 흔적들이지만, 그것은 기억의 매개물이 되어 새롭게 태어났다. 흘러간 시간과 함께 겹겹이 쌓인 붓질은 바스락거리는 풍경이 되어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작가의 회화는 오감 중에서도 촉각을 연동하여, 표면의 바스락거림을 재현해 낸다. 그것은 아크릴 물감을 물로 희석시켜, 색의 농도를 묽게 하고 엷게 채색하는 담채 기법을 재현의 기술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면의 얇은 점막을 형성하는 아교포수처리는 오래된 사진의 표면과도 같은 반점 효과를 낳는다. 작가는 무수히 반복된 필선과 위의 방법을 혼용하여, 특유의 바스락거리는 질감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오래 전 사진을 꺼내든 것처럼, 조심스럽지만 기분 좋은 설레임을 선물한다. 볕이 좋은 어느 가을날 낙엽의 표면 위를 걷는 것과 비등한 기분 좋은 바스락거림이다. 화면 특유의 이러한 질감은 시간의 층위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의 회화를 눈이 아닌 피부로 다가가게끔 한다.

작가는 화면에서 세부 디테일을 묘사하는 대신, 표현의 생략을 통해 형상의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것은 사물이 가진 본연의 느낌과 선입견을 축소하여,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금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장치이다. 형상의 틀을 완전하게 벗어나진 않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재현이라고도 볼 수 없는 작가의 회화는 사물이 가진 고유의 정서와 느낌을 본인만의 화법으로 풀어낸다. 즉 사물 바깥의 표현이 아닌, 사물이 가진 정서의 표현인 것이다. 대상이 가진 본래의 느낌이 아닌 또 다른 것을 지각하게 되는 것은 이색적인 경험이다. 프레임의 가장자리를 여백으로 처리하는 것 또한 의도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회화에서 그리는 과정을 시각화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으로서 프레임의 가장자리를 여백으로 처리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여러 겹의 붓질이 물감 층을 형성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그것을 가장자리의 빈 여백과 비교하여 볼 수 있도록 함으로서 작업 과정을 충실히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것은 그리기라는 반복된 행위가 어쩌면 매우 당연하지만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작업의 과정임을 인지하도록 한다.

그림은 화이트 큐브 안에서의 일률적인 배치를 거부하고, 꼭 벽이 아니더라도, 바닥과 선반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걸린다. 고정된 방식이 아닌 자율적인 배치는 전시 공간 전체가 하나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린다. 작가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림 안에 놓인 사물의 공간을 지각 화 하려 하였고, 보는 이가 그것을 실질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그림 속의 어떤 풍경이 우리의 마음이나 기억 속에 실재하는 것처럼, 몸을 숙이거나 올려다보는 능동적 행위를 통해 보다 구체화될 수 있다. 즉 회화를 통한 공간의 재배치는 그림이 가만히 있는 대상이 아니라, 보다 실재적인 환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탄력적인 장치임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앞서 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화라는 전통 회화의 맥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나씩 그것을 구체화 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힘겹고 더딘 시간을 동반하지만 언제고 반짝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그림은 말이 없지만 그 만큼의 온기를 내품어 우리를 그 세계 안으로 인도하고 있다. 화면 속 가만히 몸을 뉘인 돌은 아무 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돌이 건네는 언어를 듣기위해 집중한다. 필자는 작가의 회화가 그러한 기능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근사한 먼 미래의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 안에서 마주하는 사사로운 풍경은 작가의 표현을 통해 새로운 옷을 입는다. 겹겹의 옷을 입고 바스락 댄다. 바스락-바스락 그림의 소리는 돌의 과묵함을 잊게 만든다. 말이 없는 돌은 그럼에도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이겨내며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


2016.11.15

1. 이미지가 프레임 안에서 고정되서 갇힌 채 있는 것이 아닌 확장하는 것
2. 이미지 통해 어떠한 다른 것으로 연계되어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무언가
3. 어떠한 것들이 나에게 감각을 발생시키고 자극을 만들어 내는가
4. 야릇한 뉘앙스
5. 과연 그려볼만한 가치가 있은 것인가

Y.A.P 15 ‘The Twinkle World’, Exco, Daegu 2015.11.4-11.8 2013-2016

청년미술프로젝트 ‘The Twinkle World’, 엑스코, 대구 2015.11.4-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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